안녕하세요 님! 잊을만하면 다시 찾아오는 Mag MoST입니다. 2024년도 이제 반환점을 돌면서 올해의 시작을 함께한 MoST도 벌써 다섯 번째 소식을 전하는데요. 지금까지 발행한 소식 중 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슬로우스테디클럽 구성원들의 소회와 희망을 담은 프롤로그부터 가정의 달을 맞아 다양한 형태의 가족 영화를 소개한 지난 화까지 하나하나 모두 기억에 남지만, 개인적으로는 3화 '알아두면 쓸 데 있는 패션 잡학 사전 📚' 을 꼽고 싶어요. 특히, 그중에서도 올림픽 농구 유니폼을 디자인한 밴드 그레이트풀 데드(Greatful Dead)의 이야기를 좋아하는데요. 평소 패션만큼이나 스포츠를 좋아하는 저에게 패션과 스포츠의 만남은 더할 나위 없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주제였답니다.
그런데 마침, 다가오는 7월 26일,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는 소식! 3년 만에 돌아온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을 기념하면서 '올림픽 역사 속 숨겨진 패션 이야기' 세 가지를 소개해 보려고요. 말이 너무 길었네요.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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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모스크바 올림픽 🇷🇺>
혹시 이 사진을 본 적 있나요? 위아래로 아디다스(Adidas)의 삼선 트랙 수트를 빼입고 스쿼트 자세를 취하고 있는 한 남자. 이 사람의 이름은 분명 모르지만, 한 가지 사실은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남자의 국적이 '러시아'라는 것! 도대체 이를 어찌 아냐고 물어본다면 그가 입고 있는 아디다스 저지와 취하고 있는 자세를 보라고 말할 거예요. 누가 봐도 러시아 사람 아니냐고요.
무슨 소리인가 싶다면 지금 바로 구글에 'Russian Adidas'를 함께 검색해 보세요. 그러면 사진 속 남자와 똑같이 아디다스 저지를 입고 쭈그려 앉아 있는 사람들이 주르륵 등장합니다. 스크롤을 내리면 내릴수록 끝없이 반복되죠. 이 사람들은 도대체 왜 똑같은 아디다스 옷을 입고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를 찾아가다 보면 그 끝에는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올림픽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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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1980년, 한창 지구가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이 맴돌던 시절이었죠. 바로 이때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사회주의의 중심이라 할 수 있던 모스크바에서 동구권 최초의 올림 픽이 열린 것이죠. 당시에는 러시아라는 이름 대신 소비에트 연방, 줄여서 소련이 있었습니다. 체제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스포츠를 적극 활용하던 소련에게 올림픽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올림픽이 다가오자 소련 공산당 간부들은 골머리를 앓기 시작합니다. 별다른 문제가 아닌, 선수들이 입을 '유니폼' 때문이었죠. 대외 선전을 우선시하는 공산권 국가 특성상 그들이 입는 옷 역시 중요한 사안이었습니다. 문제는 소련에는 마땅한 스포츠 브랜드가 없다는 사실. 그렇게 그들은 눈을 밖으로 돌립니다.
당시 스포츠 시장을 양분하던 브랜드는 나이키(Nike)와 아디다스. 하지만, 사실상 적국이나 다름없던 미국의 나이키를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미국은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보이콧한 상태였죠. 소련에게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아디다스와 손을 잡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불과 30여 년 전, 아디다스의 고장 독일 역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맞붙었던 적국이었던 것. 현재의 적을 피하고자 과거의 적과 동침한 셈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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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아디다스 유니폼을 입고 올림픽 무대를 누빈 소련 선수단. 최대 라이벌 미국이 참가하지 않은 '반쪽짜리 올림픽'이라는 오명을 썼지만, 그래도 압도적인 성적과 함께 1위로 대회를 마무리합니다. 올림픽 단상 위로는 아디다스 유니폼을 입은 소련 선수가 수도 없이 올라갔죠. 그런데, 사진을 보니 뭔가 이상합니다. 분명 아디다스라면 줄이 '3'개가 있어야 하지만, 소련 선수들이 입은 유니폼에는 줄이 단 '2'개 뿐. 여기에는 공산당의 계략이 숨어져 있습니다. 소련은 자본주의 브랜드가 철저히 금지되어 있던 터라 다른 국가의 유니폼과 달리 보여야 했기에 나름의 커스텀 과정을 거친 셈이었죠.
하지만, 멜론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듯, 아디다스에 줄 하나 뺀다고 다른 브랜드가 되진 않습니다. 경기장을 찾은 소련 국민들이 자국 선수들의 유니폼이 본래 세 줄이 새겨진 아디다스라는 브랜드의 옷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소련에는 아디다스 열풍이 불기 시작합니다. 너도나도 소련을 세계 1등으로 만들어준 아디다스 옷을 가지기 위해 발버둥 쳤죠.
당연히 아디다스를 수입하지 않는 소련에서 아디다스를 손에 넣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 수준. 대부분 소련 국민들은 어쩔 수 없이 중국, 터키, 캅카스 등 인근 지역에서 만들어진 짝퉁 아디다스로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두 줄이 그여졌던 소련 선수단의 유니폼처럼 말이죠. 세 줄이 그어진 진짜 아디다스는 해외 왕래가 비교적 자유로운 고위층 자제 혹은 마피아들만 가질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디다스는 자연스럽게 '부(富)'를 상징하는 아이템이 되어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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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라는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자본주의 브랜드가 벌떼처럼 들이닥쳤죠. 모든 브랜드는 2억 명이 넘는 러시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다했지만, 아디다스의 아성은 절대 넘지 못했습니다. 무의식 속 뱀이 똬리 틀 듯 자리 잡은 아디다스의 로열티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지금, 러시아 사람들은 여전히 아디다스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뭐, 지금은 확인할 방도는 없지만 그럴 겁니다. 아마도요. 분명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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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 - 2021 도쿄 올림픽 🇯🇵>
두 번째 이야기는 소련이 붕괴되고 처음으로 올림픽이 열린 1992년 바르셀로나부터 시작합니다. 서문에서 짧게 소개했듯, 지난 MoST 3화에서는 소련에서 독립한 '리투아니아(Lithuania)'가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여정을 담았었는데요. 당시 무일푼 신세였던 신생 국가 리투아니아가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그레이트풀 데드를 비롯한 여러 단체와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그중에는 뜬금없게도 일본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도 있었는데요. 그 배경에는 그의 엄청난 팬이자 당시 리투아니아 대표팀의 주치의가 있었습니다. 주치의는 단복을 만들어줄 디자이너를 찾고 있었고, 혹시 모르는 마음에 연락한 이세이 미야케가 제안을 선뜻 수락하고 리투아니아 최초의 올림픽 선수단복을 만들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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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서야 패션 브랜드들이 올림픽 선수단복을 만드는 게 익숙하지만, 20세기만 하더라도 흔치 않았습니다. 그것도 타 국가의 선수단복을 디자인하는 것은 말 그대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었죠. 독보적인 소재와 패턴으로 이름을 알린 그답게 그가 선보인 옷 역시 획기적이었습니다. 모두가 격식을 갖춘 정장을 입고 나오는 와중 리투아니아 선수단은 플리츠로 이뤄진 형태 모를 옷을 입고 당당히 등장! 전 세계 언론의 집중을 한 몸에 받으며 개막식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올라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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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세이 미야케는 일본도 아닌, 리투아니아의 선수단복 디자인 요청을 수락했을까요? 명확한 이유는 밝혀진 바 없지만, 유추해 보건대 가장 '자유로운' 옷을 원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평소 인터뷰를 통해 "내가 가장 관심 있는 것은 사람들, 그리고 인간의 형태” 라며 “옷은 모든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것” 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늘 밝히며 움직이기 편한 옷을 만드는 데 열중해 온 그.
그 말을 조금 확장해 보면 단순한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 구성하는 '국가'까지 올라갑니다. 국가를 인간에 비유하면 리투아니아는 걸음마도 못 뗀 아기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국가가 편히 걸을 수 있도록 이세이 미야케는 가장 자유로운 옷을 그들에게 선물한 셈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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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30년이 흐른 2021년, 이세이 미야케의 고향 일본에서 올림픽이 열립니다. 오늘날의 올림픽 개막식은 누가 더 참신하고 창의적인 선수단복을 만드는지 겨루는 패션 브랜드의 런웨이나 다름없는데요. 200개가 넘는 참가국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국가가 있었으니, 그 주인공은 서아프리카의 소국 라이베리아(Liberia).
마치 영화 <쿨 러닝(Cool Runnings)> 속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을 연상케 하는 세 명의 선수단은 선수단복 하나만으로 뜻밖의 관심을 받습니다. 얼핏 보아도 특별한 유니폼은 다름 아닌 현재 가장 하입한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히는 텔파(Telfar)의 디렉터 텔파 클레멘스(Telfar Clemens)의 손에서 탄생한 것. 텔파는 서아프리카 전통복에서 영감받은 원피스 형태의 선수단복은 물론이거니와 세 명의 선수가 모두 출전하는 육상 종목을 위한 의상까지 디자인하는데요. 흥미로운 사실은 텔파 역시 라이베리아 국민이 아닌, 미국인이라는 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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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미국과 라이베리아, 두 나라 간에 얽힌 가슴 아픈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자유'를 뜻하는 영단어 'Liberty'에서 유래하여 '자유의 땅'을 의미하는 라이베리아는 사실, 19세기 미국 흑인 노예들이 역이민해 건설한 국가입니다. 건국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이 터지기 불과 40년 전으로 흑인 노예 문제가 극에 달했던 시기죠.
미국의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James Monroe)는 흑인 노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흑인들을 아프리카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을 하고 이를 실행에 옮깁니다. 말이 반환이지, 사실상 유기에 가까웠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라이베리아의 국기는 성조기와 비슷하며 수도는 제임스 먼로의 이름을 딴 몬로비아(Monrovia)입니다.
대서양을 다시 건넌 이들이 도착한 곳은 정말 자유의 땅이었을까요? 이들이 도착한 땅은 수많은 열강이 식민화를 포기할 정도로 척박했습니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정착민은 자신들이 미국물을 먹었다는 이유로 토착민에게 시민권조차 부여하지 않았으며, 몇몇은 토착민을 다시 노예로 판매하는 만행을 벌이기도 했죠. 현대에 들어서는 두 세력 간 내전을 두 번이나 겪으며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도 최빈국 중 하나에 머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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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못한 몇몇 이들은 오히려 노예로 살았던 미국이 더 좋았다며 다시 대서양 건너 미국으로 향하는데요. 개중에는 텔파 클레멘스의 부모님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텔파 클레멘스는 '라이베리아계 미국인'이라는 아이러니한 정체성을 갖게 되었는데요. 시간이 흘러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된 그는 돈이 없어 올림픽 출전에 전전긍긍하는 과거의 조국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손을 뻗습니다. 그가 만든 옷은 단 몇 장에 불과하더라도 그 옷만큼은 라이베리아가 이름처럼 이제는 정말 '자유로운' 국가가 되길 소망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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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애틀란타 올림픽 🇺🇸 - 2012 런던 올림픽 🇬🇧>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는 조금 가볍게 마무리해 보려고 합니다. 혹시 님은 '앰부시(Ambush) 마케팅'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 있나요? 앰부시는 '매복'을 뜻하는 말로, 앰부시 마케팅은 스포츠 이벤트에서 공식 후원 브랜드가 아니면서도 관련이 있는 브랜드라는 인상을 주어 언론과 고객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전략을 일컫습니다.
세계인의 축제이라 불리는 올림픽 공식 스폰서가 되기 위해선 적게는 몇백억, 많게는 수천억 원의 스폰서 비용을 지출해야하는데요. 제아무리 세계적인 브랜드일지라도 이정도 금액은 누구나 부담스럽기 마련.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하는 육상 스타 린포드 크리스티(Linford Christie)의 개인 스폰서였던 푸마(Puma)도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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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애틀랜타 올림픽의 공식 후원 스포츠 브랜드는 리복(Reebok).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통해 '나이키 - 아디다스 - 푸마'로 이어지는 3대 스포츠 브랜드의 아성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단단히 표명했죠. 올림픽 위원회는 공식 스폰서가 비싼 금액을 치른 만큼 그들의 권익을 지켜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합니다. 비공식 스폰서의 로고가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어디서든 보일 수 없도록 온갖 제한을 겁니다.
육상 종목 중에서도 최고 인기 종목인 100m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크리스티에게 전 세계 사람들의 눈이 향했지만, 푸마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합니다. 여태껏 제재를 피하고자 선수들의 몸에 브랜드 로고 모양 타투 스티커를 부착하기도 했지만, 이번 올림픽부터는 이마저도 저지당했죠. 푸마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푸마 로고를 노출하기 위해 밤새 머리를 맞댔고, 결국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방법을 발굴해 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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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경기가 시작되기 며칠 전, 크리스티는 기자들을 초청해 비공식 기자회견을 엽니다. 별도로 기자들을 소집해서 기자회견을 연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무슨 중대 발표라도 있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까보니 별게 없었습니다. 그저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등장한 크리스티가 기자들에게 간단한 질문을 받을 뿐이었죠. 그러다 기자회견이 끝날 때 즈음, 크리스티는 경기와 상관 없는 말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IOC는 저에게 문신까지 금지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문신을 금지한다는 서약서에 서명했지만, 이번에는 더 재밌는게 있어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을 흐린 그는 처음부터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들어 올려 자신의 눈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양쪽 눈에는 각각 한 마리의 퓨마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기본 용품부터 타투까지 온갖 제한을 당하자 하다 하다 푸마의 로고가 새겨진 콘텍트 렌즈를 착용한 것이죠. 어디서도 보지 못한 충격적인 비주얼의 아이템은 언론의 좋은 먹거리였습니다. 기자회견 다음날 전 세계 신문의 스포츠면과 브라운관에는 그의 얼굴과 함께 두 마리의 푸마도 함께 등장했습니다. 비록, 정작 그는 본경기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당하며 씁쓸히 은퇴했지만, 기자회견이 열린 순간만큼은 역대 올림픽 최고의 순간으로 꼽히며 아직도 회자되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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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부시 마케팅의 또 다른 사례로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의 잇아이템으로 등극했던 비츠 바이 닥터 드레(Beats by Dr. Dre, 일명 닥터 드레)가 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수영 간판스타로 활약했던 박태환 선수가 애용하면서 국내에서 유명세를 탄 닥터 드레의 헤드폰은 사실, 올림픽 선수촌에서 가지고 있지 않은 선수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경기 시작 전, 집중도를 높이고 긴장감을 완화하기 위해 음악을 듣는 건 운동선수들의 보편적인 루틴이지만, 그렇다고 모두 같은 브랜드를 쓸 이유는 없을 터. 심지어 올림픽 공식 스폰서도 아니었던 닥터 드레의 헤드폰을 선수들은 왜 너도나도 사용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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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을 시작하기에 앞서 런던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닥터 드레는 영국 국기 유니언 잭(Union Jack)이 그려진 스페셜 에디션을 영국 선수단에 선물했는데, 그 인기가 예상을 뛰어넘자 한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냅니다. 올림픽 선수촌이 밀집해 있던 런던 쇼디치(Shoreditch) 지역에 브랜드 체험존을 설치했고, 각 국가 선수단을 일일이 초대한 것이죠.
그리고 선수들에게 제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더불어 각 국가의 국기가 그려진 헤드폰을 똑같이 선물합니다. 국가 대항전 특성상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고취된 선수들에게 국기가 그려진 헤드폰은 더할 나위 없었고 하나의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으로써 선수촌 안에서 작용했습니다.
선수들은 경기장에 들어올 때마다 닥터 드레의 헤드폰과 함께 등장했으며 덕분에 닥터 드레의 판매 대수는 42%, 연 매출액은 116% 수직 상승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사실, 런던 올림픽의 공식 오디오 장비 스폰서는 파나소닉(Panasonic). 한화로 900억 원에 달하는 스폰서 비용을 냈지만, 정작 스포트라이트는 모두 닥터 드레의 몫이었습니다. 올림픽이 끝나자 전 세계적으로 닥터 드레 유행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의 주인공은 그 누구도 아닌 닥터 드레라는 우스겟소리가 나올 정도로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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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쌓을수록 '시야가 넓어진다'라는 말보다 '시야가 맑아진다'라는 말을 더 좋아해요. 이미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은 똑같아요. 그 똑같은 세상에서 흐릿한 시야의 누군가는 그냥 지나칠 사소한 현상을 보고 누군가는 의미 있는 발견을 해내죠. 마치 제 눈에 맞는 안경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도 있겠네요. 비록, 오늘은 패션과 스포츠에 한정된 이야기를 다뤘지만, 이외에도 분명 각자가 좋아하는 다양한 문화를 좇다 보면 시야가 맑아지는 나를 분명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이번 주제가 흥미로웠다면 꼭 피드백을 남겨주세요! 이번 올림픽에서는 얼마나 재밌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탄생할지 벌써 기대되네요. 그럼, 다음 달에 다시 찾아뵐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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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의 생각이 궁금해요!
이번 뉴스레터를 읽고 좋았던 점이나 아쉬웠던 점을 알려주세요! 아니면 님이 기억하는 스포츠와 패션의 만남은 무엇이 있나요? MoST에서 다뤘으면 하는 주제를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MoST를 발행하는 건 저희지만, 만들어가는 건 '우리'입니다. 구독자분들의 의견을 통해 더 넓고 깊은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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